person at the end of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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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1순 이강보

처마 끝 길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시인 조지훈의 <고풍의상> 이란 시의 한 구절입니다. 시인의 노래처럼 내가 사는 산골마을에 봄이 깊어갑니다. 살랑살랑 봄바람을 타고 숲속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두견이 소리에 봄날의 밤도 깊어갑니다. 때로는 구슬프게 때로는 명랑하게 들려오는 두견이 소리를 나는 좋아합니다. 두견새는 이름도 많습니다. 두견이, 자규, 소쩍새, 접동새, 귀촉도…두견이의 그 구성진 노랫소리를 빼놓고는 봄날 밤의 낭만을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봄날 밤의 정취에 잠깁니다. 내 마음은 어느덧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산골 마을로 달려갑니다. 그 때도 이 맘 때면 앞산 뒷산에서 소쩍새가 울었고, 동구 밖에는 하얀 배꽃 위로 달빛이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지요.

봄날 밤에 두견새가 있다면 낮에는 종달새가 있습니다. 푸른 보리밭 위를 맴돌며 즐겁게 지저귀는 종달새의 노랫소리에 내 마음도 덩달아 들썩였지요. 어쩜 종달새는 생김새도 목소리도 그리 싱그럽던지요. 그런데 그 많던 종달새가 지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뻐꾹 뻐꾹 봄이 가네 뻐꾸기 소리 잘 가란 인사 복사꽃이 떨어지네…

뻐꾸기 소리는 봄이 가는 소리이고 여름이 오는 소리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숲속마다 청아하게 울리는 뻐꾸기 노랫소리를 나는 좋아합니다.

나는 숲속 마을에 삽니다. 자연을 좋아하는 나에게 주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푸른 바다도 좋지만 초록 숲속을 나는 더 좋아합니다. 새봄 숲속 여기저기 메마른 가지에서 연초록 잎새들이 돋아날 때면 나는 어린아이처럼 깡충깡충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전에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삭풍에 떨고 있던 겨울 숲을 내가 보고 슬퍼하였더니, 이제 녹음이 우거지는 오월의 숲을 보며 나는 기쁩니다. 나무들도 추운 겨울을 잘 견디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을 맞았으니 나도 거친 광야 같은 이 시간을 잘 버티고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숲속 길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신선한 아침 공기 속에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는 것도 좋고, 저녁노을 속에 오솔길을 따라 생각에 잠기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다가 숲속 어딘가에서 풀 섶에 숨어있는 샘물을 발견할 수 있다면 나는 환호성이라도 지를 것입니다. 옛날 뒷동산 숲속에서 찾아냈던 그 옹달샘은 우거진 풀 아래에서 수줍은 듯 작은 소리로 퐁퐁 소리를 내며 해맑게 웃고 있었지요. 

산골 마을에 소나기가 내립니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합니다. 우산을 쓰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도 좋고 창문을 활짝 열고 숲속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 것도 좋습니다. 빗소리에 실려 향긋한 숲의 향기가 코끝에 느껴질 때면 나의 마음과 몸도 생기로 충만합니다. 비가 내리는 숲속은 온갖 생명이 생동하는 자연의 오케스트라입니다.

빗소리는 얼른 들으면 다 같은 소리 같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이면 그렇지 않습니다. 빗줄기가 떨어지는 대상에 따라 빗소리는 다채롭습니다. 숲속에 떨어지는 빗소리, 뒤뜰의 잔디밭이나 텃밭에 떨어지는 빗소리, 아스팔트 도로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양철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다 다릅니다. 활짝 핀 장미꽃 그 여린 살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분명 있을 테지만 나는 그것까지는 듣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니 비는 소리 없이 살아가는 만물의 소리를 찾아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많은 빗소리 중에 나는 옥수수밭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 소리는 큰 나무들이 서 있는 숲속에 내리는 빗소리와도, 작은 화초들이 모여 있는 화단에 내리는 빗소리와도 다릅니다. 옥수수 잎과 줄기에서 나는 빗소리는 투둑투둑 날렵한 타악기 소리 같기도 하고, 사그락사그락 가을밤에 책 넘기는 소리 같기도 합니다. 세로로 길쭉하고 활처럼 휘어진 옥수수 잎들 위에 빗방울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그저 그네처럼 스쳐 갑니다. 그나저나 이 비가 그치면 저 새는 다시 긴 날을 노래 부르고 옥수수는 어느덧 익어갈 것입니다.

봄이 가고 여름도 지나면 이 숲은 알록달록한 채색옷으로 갈아입은 채 상기된 얼굴로 나를 맞을 것입니다. 나는 단풍이 고운 숲속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내가 사는 산골에는 유난히 참나무가 많습니다. 참나무 에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길참나무, 졸참나무 이렇게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있습니다. 그 열매는 크기와 모양에 따라 도토리라 불리기도 하고 상수리라 불리기도 합니다. 나는 가을에 노오란 단풍이 든 떡갈나무 숲길을 걷는 것이 즐겁습니다. 걷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멈춰 서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읊조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꺽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시인은 훗날 어딘가에서 이야기합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나에게도 가고 싶었지만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나의 가슴 속에 묻어 두고 잊으려 한 길이지만, 해마다 가을이 오고 떡갈나무 숲에 노오란 단풍이 들 때면 생각나는 길입니다. 내가 그때 그 길을 택했다면 나의 인생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번에는 내가 반드시 그 길을 택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길과 이 길은 똑같이 아름다운 길이었고, 아마 그 길로 갔어도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이 길과 거의 같아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가을이 오고 또 가고 떡갈나무 숲속의 단풍도 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를 반복할 때 내 앞에 다시 갈림길이 나타났습니다. 내가 보니 한 길은 넓고 평탄한 길이었고 그 길 끝에 큰 문이 있었으며, 다른 한 길은 좁고 험한 길이었고 그 길 끝에 좁은 문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예전처럼 두 길을 두고 망설이거나 한길을 택하기 위해 다른 한 길을 오랫동안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나의 손을 끌더니 나를 좁고 험한 길로 데려갔습니다. 그 길은 나의 생각이나 의지와 상관없는 길이었지만, 내 손을 잡은 그분에게서 알 수 없는 능력과 광채가 느껴져 나는 그분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 길은 좁고 험한 길이었으므로 나는 그 길에서 비틀거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분의 손길이 항상 나를 감싸고 있었고 내 마음에 전에 모르던 평강과 기쁨이 생겼습니다. 전에 내가 두견이 소리나 떡갈나무 단풍을 보고 느끼던 즐거움과는 완전히 다른 기쁨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길은 생명의 길이었고 진리의 길이었습니다. 영원한 나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나는 오늘도 이 길을 걸어갑니다. 기쁘게 걸어갑니다. 나는 이 길을 걷는 행복한 순례자입니다. 이 길 끝에서 영광의 주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