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원, 『시와 산책』, 시간의 흐름, 2020.
한 편의 시 같은 산문이었다. 가볍게 한 손에 잡았지만 천천히 오래 읽었다. 표현이 참 섬세하게 다가와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곳곳에 별처럼 빛나는 문장이 있어 밑줄 긋기를 멈추기가 어려웠다. 책에 표시해둔 언어들로 종이를 가득 채워도 충분할 듯하다. 깨끗한 바람이 부는 느낌이다. 시를 읽고 쓰는 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토록 다정하고 투명하구나.
시어는 말 그대로 돌멩이, 가시, 구름 같은 단어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얼굴이나 사건일 수도 있다. 그것은 아주 깊은 곳에 잠겨 있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예민하고 집요하게 찾아 헤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어둠 속으로 첨벙 뛰어들어야 한다(73p.).
엉성한 눈과 소란한 귀를 가지고 바쁘게 살아온 나와 내가 쓴 모든 글이 부끄러웠다. 찬찬히 듣고 뜯어봐야 하는데 열에 들떠 급히 서두르거나 긴장부터 하니 무슨 일이 될까. 매일의 삶이 시가 되는, 삶에서 주운 시어와 거기서 만나는 타자들을 소중히 다루는 작가의 태도를 닮고 싶다. 매 순간 집요하게 수집하고 산책하며 고요하고 단아하게, 따뜻하고 맑게 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계절마다 다른 모자를 쓰고 언제나 존재”하는 고통과 함께 기꺼이. 생각의 꼬리가 이어진다.
눈을 기울이고 귀를 기울이는 나의 산책 동선은 직선이 아니다. 모든 방향을 만끽하고 싶은 나비처럼 나선을 만들며 움직인다. 그러니 산책 시간이 툭하면 길어지고 만다. 걷다가 죽어가는 벌레 곁에 있어주고, 창을 내다보는 개에게 인사하고, 고양이의 코딱지를 파주며 탕진하는 시간이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 시간의 나는 진짜 ‘나’와 가장 일치한다. 또한 자연이나 스치는 타인과도 순간이나마 일치한다. 그 일치에 나의 희망이 있다. 부조리하고 적대적인 세계에서 그러한 겹침마저 없다면, 매 순간 훼손되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견딜까(157p.).
나는 걷기를 모른다. 나는 제대로 걷지 못한다. 걷기란 무엇인가. 흐린 날을 다정히 맞는 사람, 하나의 창으로도 충분한 사람, 내 안과 밖의 온기를 믿는 사람, 시의 한 구절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 온 우주보다 더 큰 마음을 알고, 그 한 켠에 넉넉하게 울음의 자리를 내어줄 줄 아는 사람, ‘행복’이 ‘나’와 ‘당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당신 ‘사이에’ 있음을 아는 사람. 이 사람과 더불어 걷기야말로 시와 닮은 아름다운 산책이겠다. 세속적인 욕망과 거리가 먼, 쓸모를 기대하지 않아 더 귀한.

기쁨4순 최유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