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양화진에서

화평1순 이강보

예전엔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믿음도 저절로 자라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배움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뒤로 물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신앙도 세상이라는 거센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전진하지 않으면 퇴보하는 것이고, 적당히 세상과 어울려 현상유지 하는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구원을 얻은 성도의 본분은 성화의 과정을 따라 끊임없이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고 주님이 보내면 어디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나는 오늘도 넘어지고 나는 오늘도 죄인입니다. 주의 뜻 이루며 살기엔 부족합니다. 주여 나는 연약합니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젊은 날에 좋아하며 읊조리던 생명의 서란 시의 서두입니다. 청년의 때 방황하고 좌절하며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 나도 그 시인처럼 저 먼 곳으로 떠나 열사의 태양 아래에서 나 홀로 나의 본질, 나의 운명과 마주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믿음의 눈으로 보니 삶의 회의로 내 마음이 병들고 생명이 부대낄 때 내가 가야 하는 곳은 아라비아의 사막이 아니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주님께 나아가야 했습니다. 예수의 흔적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믿음이 희미해지고 나의 소망이 흔들릴 때 이곳을 찾습니다. 나는 오늘도 양화진에 왔습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구한말 척박한 이 땅에 찾아와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섬기며 사랑하다가 숨진 수많은 선교사의 묘가 모여 있습니다.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한 시간에 나는 선교사님들의 묘역을 순례하며 그들의 삶에서 예수님의 흔적을 찾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미국 유수한 대학의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20대에 모교의 교수로 초빙을 받았으나 안락한 길을 뿌리치고 조선에 들어와 열악한 위생환경으로 전염병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자신이 풍토병에 걸려 34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조선 땅에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남겼는데 아내에게 이 땅에 남아 선교사역을 계속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며, 자신의 사역이 보잘 것 없었지만 모두 예수님을 위한 것이었다고 고백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양화진에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조선에 입국한 어떤 선교사님은 평양에서 사역 중 전염병으로 순교한 남편을 이 땅에 묻고 출산을 위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어린 두 자녀와 함께 조선으로 입국하여 어린 딸을 풍토병에 내주면서까지 평생 조선의 백성들을 위하여 사랑의 의술을 펼치고 복음을 전하며 살다가 죽었습니다. 양화진에는 그들 선교사님 부부와 아들 부부를 비롯해 3대에 걸쳐 6명이 묻혀 있습니다. 또 어떤 선교사님은 4대를 이어 이 땅에서 선교하며 섬기다가 죽어서도 4대가 모두 양화진에 묻혀 있습니다.

무엇이 저들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척박한 이 땅에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게 하였을까? 그들은 왜 죽어서도 이 땅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리라 

먼 옛날 아일랜드의 켈틱 수도사(선교사)들은 복음을 들고 낯선 나라로 순례의 길을 떠날 때 하나님을 위해 세 가지를 포기하였다고 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고향, 둘째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 셋째는 자신의 평안한 미래. 또 모라비안 선교사들은 선교지로 나갈 때 스스로 여비를 마련해 갔으며, 목적지에 도착하면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그들이 택한 그 땅에 뼈를 묻기까지 살며 사역을 하였다고 합니다. 

해질녘 양화진은 인적 없이 고요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어떤 선교사님의 묘비에 새겨진 말씀이 다시 내 발길을 붙잡습니다.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몰약의 산을, 유향의 언덕을 오르겠습니다(아 4:6).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만이 나의 길이오니 나는 그 길을 따라갑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